그의 순전한 비밀
‘마지막 사랑’, ‘시작’, ‘그대 때문에’ 등 절절하고 감미로운 노래로 우리의 귀를 사로잡은 뮤지션 박기영이 이제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불후의 명곡>에서 팔색조의 매력을 선보이는 가수, 동시에 자신의 곡을 쓰는 작가로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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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데뷔했으니 올해 벌써 20주년이다. 하하. 아니다. 앨범은 1997년 11월에 만들었지만 정식으로 출시된 건 이듬해 봄이니 1998년 데뷔다. 우리 때만 해도 녹음을 마치고 음반을 찍은 뒤 1만 장 정도 선주문이 들어와야 앨범을 정식으로 출시할 수 있었다. 데뷔는 시중에서 앨범을 살 수 있을 때 쓸 수 있는 단어였다.
지금과는 계산법이 다른데? 그때는 음원이 아니라 음반이 중심이었으니까. 홍보 CD라고 들어봤나? 홍보용으로 만든 CD를 방송국에 돌리다 잘 안 되면 가수의 꿈을 접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에 홍보 CD가 실패했다가 6개월 후 인기를 얻어 같은 앨범으로 데뷔한 경우도 있고. 음반 매장에 가서 ‘아무개 앨범 주세요’ 했을 때 실제로 살 수 있는 ‘정식 데뷔’는 결코 쉽지 않았다.
1집 앨범이 록이라는 게 흥미롭다. 사실 내 음악적 뿌리는 클래식이다. 피아노로 음악을 접했고 그 뒤 팝과 솔을 거쳐 20대 초반에 밴드를 하면서 록 음악에 심취했을 때 데뷔해 로커가 됐다. 데뷔는 그렇게 했지만 지금도 팝적인 성향이 짙고 R&B까지는 아니더라도 솔 느낌의 음악을 선보이곤 한다. 1집은 사실 타이틀곡을 빼고는 록 성향이 강하지 않았다. 내가 어리기도 했고 제작자의 의견이 많이 개입된 수동적인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 입김이 세지면서 앨범의 성향이 록으로 흘러갔다. 록 스피릿이 충만한 시절이었으니까.(웃음) 2집은 모던 록, 3집은 로큰롤, 하드록, 얼터너티브 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4집부터는 오히려 팝 쪽으로 많이 갔고. 5집부터는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음반을 채우기 시작했다. 모든 가수는 계속 음악이 변한다. 중요한 건 소리에 대한 주체적 태도다. 좋은 소리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박기영이 생각하는 좋은 소리, 좋은 음악이 궁금하다. 자연스럽고 악기가 가진 소리를 왜곡 없이 전달하는 게 좋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티스트가 의도한 대로 표현된 소리가 좋은 음악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좋은 음악을 말할 때는 라이브와 녹음, 두 부문을 별개로 봐야 한다. 라이브와 녹음이 주는 음악적 감동은 그 지점이 서로 다르다. 라이브용 음악과 퍼포먼스용 음악도 마찬가지다. 퍼포먼스가 중요한 음악을 하는 가수가 꼭 라이브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마이클 잭슨만 해도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해 립싱크를 했다. 격렬하게 춤을 추면서 노래까지 완벽하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춤과 노래를 모두 잘해야 하는 아이돌을 보면 마음이 찡하겠다. 비아냥이 아니라, 지금 대중이 아이돌에게 원하는 건 거의 서커스 수준이다. 춤뿐 아니라 노래도 완벽하게 하길 원하지 않나. 노래하는 사람들은 일단 잠을 잘 자야 한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성대는 휴식을 충분히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을 거의 못 자는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하는 친구들에게 칼군무를 추면서 박기영처럼 노래하라고 요구하는 건 분명 잘못된 거다. 춤추는 노래와 발성에 집중하는 노래는 따로 있다. 간혹 사람들은 아이돌에게 가창력 좋은 가수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미 그들은 충분히 노력하며 굉장한 경쟁을 견디고 있다. 인간적인 태도로 아이돌을 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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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박기영이란 뮤지션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제 데뷔 20주년이 가까워지도록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지 않나. 하하.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용기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무엇보다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 나약해질 수 있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더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없이 스트레스를 받다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지점을 고민해본 적이 있다. 행복의 정점을 딱딱 찍어보니 2개가 나오더라. 하나는 가수로서 무대 위에서 5분 동안 집중해 연기하며 노래하는 순간, 다른 하나는 작가로서 곡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붙이고 프로듀싱하며 음악을 만들어내는 순간이다. 그걸 깨달은 뒤에는 이 행복의 꼭짓점만 보고 걷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일련의 과정이 모두 소중해졌다. 탑을 쌓다 보면 모난 돌도 있고, 서로 맞지 않는 돌도 있지만 결국 탑을 쌓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 아닌가. 마찬가지로 목표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힘들 때도, 멈춰야 할 때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모두 필요한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일희일비하기보다 좀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 불안한 순간이 와도 이 또한 결국 지나갈 거란 생각이 든달까.
한 분야에 20년간 있으면 다 그렇게 되나? 아직도 멀었다.(웃음) 그리고 사실 데뷔 이후 근 20년이지 실질적으로 음악에 집중한 건 그 절반인 10년이다. 나머지 10년은 여러 이유로 음악에 풍덩 빠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공백도 다 경력이더라. 사람이 쉬지 않고 계속 달릴 수는 없다. 공백조차 내 음악 인생 20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가수, 작가 말고 꼭짓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엄마 역할이다. 딸아이를 키우는 경험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이다. 딸이 엄마바라기라 38개월 동안 수유를 했는데, 그래서 근 3년 동안 제대로 된 음악 활동을 하지 못했다. 간헐적인 이벤트처럼 싱글을 내고 무대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그건 다 주변 사람들이 배려해준 덕분이다. 육아는 무척 힘들지만 세상의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엄청난 인내와 이해, 배려와 소통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무대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2집 음반에 실린 노래를 요즘 들어보면 처음 레코딩 버전과 요즘 라이브 버전 사이의 간극이 크다고 느낀다. 훨씬 목소리가 풍성해지고 안정감이 생겼다고 할까.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확실히 변화가 생겼다. 2012년 <오페라스타>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성악을 배우면서 바뀌기 시작한 것 같은데, 소리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며 다양한 장르를 겪다 보니 어느 순간 접점을 찾은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굉장한 즐거움과 고통이 수반된다. 무대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환희와 두려움이 동반된다. 작품도 똑같다. 끝없는 충만감과 엄청난 좌절감이 함께 온다. 항상 우리는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줄을 팽팽히 당긴다.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한쪽으로 빠지게 된다. 그래서 균형이 꼭 필요한데 이런 경험이 음악 세계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아닐까.
<불후의 명곡>에서 보여준 팔색조 같은 모습에 팬이 됐다.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세상에 예쁜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무대에 오를 때 나 자신은 가장 예쁘게 빛난다.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가수 박기영은 평소엔 옆집 가현이 엄마다. 정말 존재감 없이 돌아다닌다. 액세서리도 안 하고 예쁘게 입으려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딱 아이 돌보기에 최적화된 환경에서 생활한다. 결혼식처럼 특별한 행사에 참여할 때가 아니면 추리닝을 입는 날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반짝반짝 빛날 수 있으니까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것 같다. 아이 엄마의 일탈이랄까. 지금이야 아이가 꽤 커서 허리 숙일 일이 많지 않지만 어릴 때만 해도 하도 기어 다녀서 내 무릎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였다. 그러다 가끔씩 무대에 서면 그렇게 짜릿할 수 없는 거다. 사실 이런 것도 아이 키우기 전엔 잘 몰랐다. 공백의 시간을 겪다 보니 내가 얼마나 무대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늘 스트레스를 주던 무대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즐거움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바꾸니 무대에 설 수 있는 고마움을 열정적으로 풀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토록 음악에 열정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이 대체 뭐길래 사람에게 이토록 큰 힘이 되는가? 개인적으로 음악을 생각하면 소름부터 돋는다. 내가 지금까지 유일하게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고 계속 집중할 수 있는 게 바로 음악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음악을 빼면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기영이라는 사람은 음악을 하기 때문에 존재 가치가 생기고 음악이 없다면 일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내가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토록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건 내게 큰 행운이다. 늘 감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 사는 게 다 비슷한 것 같은데 뮤지션들은 일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이를 음악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도구다. 우리가 포착한 것을 사람들과 공감하고 공유하는 음악적 도구 말이다. 음악적 재능은 축복이다. 이 재능을 갈고닦아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자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런 역할에 대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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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이 히트곡을 욕심내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까? 물론. 개인적으로 히트곡의 정의는 온 국민이 사랑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서 축제를 즐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더라.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물론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한 것도 히트곡이다. 하지만 지금 히트곡은 어떤 특정 세대만 향유하고 있다. 온 국민이 사랑하는 노래를 나도 해보고 싶다. 못해도 10년에 하나씩은. 많은 사람이 향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곡 말이다. 물론 상업적 성공에 대한 소망도 당연히 있다. 긍정적 욕심은 언제나 필요하고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앨범을 냈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완전 실망한다. 나도 사람인데! 삶도 어려워지고. 음악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히트곡이 필요하다.(웃음)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공감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즐거워해야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런 성공이 차후 작업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된다. 내가 만약 완벽한 작가주의 성향을 타고났다면 다른 사람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았겠지. 내 만족이 우선일 테니까.
음악 활동을 하면서 은인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오페라스타>의 강성신 감독, <나는 가수다>의 박석원 감독, <불후의 명곡>의 권재영 감독이다. 먼저 <오페라스타>를 통해 성악을 배우면서 크로스오버가 가능해졌다. 박석원 감독은 2014년 <나는 가수다> 추석 특집 때 불러주고 2010년 ‘아네스의 노래’라는 곡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다. ‘아네스의 노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에 멜로디를 입혀 탄생한 곡이다. 당시 박기영은 앞으로 음악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90%였다. 농담이 아니라 그때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가수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돌 음악 시장의 음악적 역량이 굉장히 커지면서 나 같은 뮤지션은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음악을 계속해야 할까 회의감이 드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때 박석원 감독이 대한민국영화대상 시상식에서 영화 <시>에 헌정하는 곡을 만들어 공연하자는 제안을 했고, 이를 받아들여 ‘아네스의 노래’를 만들었다. 나중에 이창동 감독은 내게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 있다”면서 계속 음악 활동을 해달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뮤지션으로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불후의 명곡>의 권재영 감독은 “기영 씨가 원하는 음악을 우리 프로그램에서 자유롭게 펼쳐라. 아이가 어려서 걱정되는 거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의해서 한두 달에 한 번씩 나갔고, 아이가 크면서 자주 나가게 되어 재기의 발판이 마련됐다. 정말 이 세 분이 없었다면 지금 <노블레스 맨>과 인터뷰하는 박기영은 없을 거다.
지난봄부터 새로운 기획사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지난 4월에는 성산동 톤스튜디오에서 매회 50명의 팬과 함께 라이브를 하고, 그 실황을 앨범으로 만드는 특별한 공연을 했다. 이 스튜디오 라이브는 매년 라이브 앨범을 내기 위한 프로젝트로 해마다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9월 1일, 2일 스탠딩 록 공연을 준비 중이다. 12월 24일에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고 내년 4월에는 스튜디오 라이브를 다시 할 계획이다. 내년 7월 말에는 스탠딩 록 공연을, 11월에는 8집 앨범을 내는 동시에 큰 공연장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해보려 한다.
10년 후 박기영은 어떤 모습일까? 장담하긴 어렵다. 하지만 매 순간,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스스로 선택한 길 위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운 것 같다. 흔한 말로 부모님과 자식은 선택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수없이 많다.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행복이다. 나 자신이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진다는 걸 알았다. 오늘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지금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화보 사진을 찍었는데 마음에 들게 잘 나왔다면 그 또한 성공이다. 이렇게 매일 내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고, 혹 실수가 있었다면 빨리 인정하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다보면 소소한 기쁨을 알아가면서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어딘가에 서 있지 않을까?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사진 최용빈 헤어 애경(끌림 도산점) 메이크업 백진연(끌림 도산점) 스타일링 이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