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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식 하드코어

LIFESTYLE

이제 막 지천명(知天命)에 접어든 화엄음악제 원일 음악감독이 13년 전인 2004년, 불혹(不惑)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띈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원일은 최근 일탈을 꿈꾸고 있다. 더 이상 작곡가만이 아닌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한다. 프로젝트 실행자로서 일을 저지르고 싶은 것이다. 그는 파란만장하게 찾아올 40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을 가슴 떨리게 기다리고 있다.” 피리·타악기 연주의 거장, 작곡가, 영화음악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화엄음악제 총감독 등 수많은 수식어로 중무장한 40대와의 진검 승부를 마치고 다시 칼집을 정비한 원일에게 우리는 새로운, 아니 그다지 새롭지 않을 수도 있는 호칭 하나를 부여해야 할 것 같다. ‘현대 예술가 원일’. 소리와 음악, 영상, 설치, 그리고 그것이 모여 하나의 퍼포먼스를 이루는 원일식 현대 예술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원일 감독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그의 음악은 마력이다”라는 평에 쉽게 동조할 것이다. 지난 9월 6일, 서울돈화문국악당 ‘미래의 명곡’ 시리즈 첫 무대를 장식한 <미래의 명곡-장단 DNA & 원일> 공연도 그랬다. 다음 날 작업실에서 만난 그에게 “어제 공연은 정말 하드코어적이었어요”라고 하자 그는 “푸흡” 하고 웃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원일 감독과 박은하, 김정희, 김복만 명인이 꽹과리, 징, 장고의 사물놀이로 만들어낸 굿과 장단의 폭발적인 무대는 ‘미친’ 무대를 넘어 충분히 ‘섹시’하다고 할 만했다. 무엇보다 공연 막바지를 향해가며 동해안 굿가락과 풍물가락, 춤가락이 하나 되었다가 다시 해체되는 장고 합주 공연은 소리와 음악의 이질적 충돌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격정적인 에너지를 확인한 무대였다.
공연 시작 부분 피리 소리와 함께 바람이 잔뜩 들어간 투명한 비닐 기둥이 무대와 관중석 계단을 점령하는 퍼포먼스는 지난 10년간 원일식 음악이 한국 사회에서 팽창해가는 과정을 보는 듯했으며, 집요하게 반복되는 북과 선무도 공연에서는 일상을 벗어나 겪는 어떤 충돌과 일탈을 선사했다.
덕양중학교 재학 시절 밴드부 선배들의 권유로 시작한 클라리넷을 통해 악기 연주에 첫발을 디딘 그는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사물놀이를 만든 전설적 상쇠(사물놀이의 리더가 되는 꽹과리 연주자 중 가장 기예가 뛰어난 사람) 김용배 선생에게 꽹과리와 사물놀이를 배우고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인 정재국 명인에게 피리와 태평소를 배웠다. ‘장단 DNA & 원일’ 공연 무대에서 설장구와 쇠춤 명인 박은하 선생이 원일의 고등학교 재학 시절을 추억하며 “꽤 똘똘한 학생이라 김용배 선생님과 제가 원일 씨를 많이 예뻐했다”고 고백했을 만큼 그는 국악고등학교 재학 당시 일찌감치 사물놀이패를 구성해 크고 작은 무대에 선 국악계의 샛별이었다. 이후 추계예술대학교 국악과에서 피리를,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서울시국악관현악단 피리 단원으로 활동하며 점점 활동 범위를 넓혀가던 그는 타악 사물 그룹 ‘푸리’ 결성, ‘바람곶’ 결성,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조교수,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거쳐 올해 여우락페스티벌 음악감독, 화엄음악제 총감독으로 활동하며 마력, 마법, 치유, 절정 그리고 천재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현대 예술가의 모습으로 우리 음악의 자기 진화를 실천 중이다. 영화 <꽃잎>, <아름다운 시절>, <이재수의 난>, <황진이>의 음악감독으로 대종상영화제 음악상을 수상하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음악감독 등을 역임하며 우리 음악의 현재를 보여준 예술가 원일. 혜화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와 전날 펼친 공연 ‘장단 DNA & 원일’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참고로 그 무대는 원일 감독이 스승 김용배 선생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 공연이다.

원일 감독은 2017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음악감독을 맡아 한국 음악의 자기 진화를 확인하는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사진은 원일 감독이 연주에 참여한 ‘장단 DNA-김용배적 감각’ 공연.

어제 저녁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열린 <미래의 명곡-장단 DNA & 원일> 공연은 꽤 놀라웠습니다. 마치 방금 전까지 라파엘로의 그림을 마주보다 난데없이 폰타나의 찢어진 캔버스 작품을 마주한 느낌이었어요. 어제 음악은 전통 국악과도, 서양 악기와 우리 악기를 섞은 ‘퓨전 국악’과도 달랐죠. 제3의 음악이었어요. 저는 그걸 이중나선이라고 표현합니다. 소리와 음악의 이중나선이 똬리를 트는 구조가 제가 하는 작업이에요. 단순히 기타와 가야금을 같이 연주하는 퓨전과는 다르죠. 제 가방엔 늘 휴대용 마이크가 들어 있어요. 재미난 소리가 들리면 바로 녹음하려고요. 예를 들어, 어느 음식점에 갔는데 선풍기 소리가 특이하면 바로 녹음합니다. 그렇게 얻은 소리로 샘플링을 뜨고 공연을 위한 음원으로 사용하죠.

사실 소리와 음악의 이질적 조합은 EDM과 현대음악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감독님의 음악에서 그게 더욱 확실히 들릴까요? 말씀하셨다시피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도 소리와 음악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제 음악에서 그게 더욱 센 충돌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제가 하는 음악이 국악에 바탕을 두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전통악기를 사용하다 보니 거기에 현대적 개념을 더하면 간극이 더 벌어지는 것같이 말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스스럼없이 해와서인지 제게는 그런 ‘짓거리’가 자연스러워요.

어제 공기를 가득 넣은 큰 비닐 기둥들이 피리 소리에 맞추어 무대에 설치되었는데, 그 기둥의 의미는 뭔가요? 물론 제 마음대로 해석하고 감상하긴 했지만 사실 공연 내내 궁금한 부분이었어요. 어제 무대에 오른 ‘장단 DNA & 원일’은 프로젝트 그룹인데 총 5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를 포함한 4명의 연주자와 설치미술가 적극 씨가 함께하고 있죠. 제 피리 연주에 맞추어 거대한 비닐 기둥을 설치하자는 건 적극 씨의 아이디어였어요. 아까 어제 공연이 하드코어적이었다는 말에 좀 놀라 웃긴 했지만 사실 그 설치물이야말로 하드코어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제가 봐도 비닐 기둥은 무척 섹시했으니까요. 사실 피리는 연주자가 숨을 뱉어 소리를 내는 악기인데, 거대한 비닐 기둥으로 피리 연주 무대를 뒤덮은 건 어떤 역행, 이상한 경험, 충돌 같은 걸 뜻했죠. 물론 해석은 관객의 몫이지만요.

맞아요. 피리 연주의 음정도 상당히 현대음악적인 데다 부풀린 비닐 기둥이 무대를 점령하는 걸 보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어요. 원일 감독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순간 고민도 했고요. 그게 예술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관객의 혼란, 고뇌, 갈등, 그런 것이 모두 경험이죠. 저는 ‘관객이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앞으로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기능이라고 봅니다. 공연장에서 관객에게 어떤 충격을 주고 싶어요. 물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각자 다르겠죠. ‘저게 뭐야?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도 저는 경험이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어제 비닐 기둥은 관객의 그런 태도를 증명하는 어떤 증거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죠.

혹시 자기 자신이 그런 식으로 증명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관객은 없을까요? 있겠죠. 그런데 저는 그런 불편함을 야기하는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어요. 관객이 공연장에 왔어요. 곧 불이 꺼지죠. 관객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저라면 이럴 거예요. ‘아, 무대에서 곧 무슨 일이 벌어지겠구나. 제발, 어떤 일이든 일어나길!’ 공연이 끝났어요. 불이 켜졌어요. 근데 별일 안 일어났어요. 이게 제일 재미없는 공연이에요. ‘별거 아니잖아’가 아니라 ‘어, 이거 뭐지? 이 이상한 느낌은 뭐지?’ 하는 게 공연 예술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죠.

어제 ‘장단 DNA & 원일’ 공연이야말로 그런 맥락이었어요. 김용배 명인은 1970년대에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선생과 함께 당대 최고의 사물놀이를 선보인 상쇠였습니다. 꽹과리를 깨고 벽에 ‘무(無)’ 자를 써놓고 서른다섯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분의 삶을 기념한 이번 굿 공연은 뭐랄까, 강렬하고 영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공동체 중심의 가치에서 생성된 굿은 종교적 주술의 의미보다는 공동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의식이라고 생각했어요. 무너진 어떤 걸 회복시키는 행위. 장단 DNA는 그런 의미에서 굿을 현대화했어요.

굿을 모티브로 한 공연이라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는데 의외의 몰입감을 경험했어요. 네 분의 설장구 소리와 꽹과리 연주가 초반엔 소음으로 다가왔지만 규칙적인 장단에 빠지다 보니 어느덧 노랫소리로 들리더군요. 속으로 ‘와, 이 공연 놀랍다’ 그랬어요. 감독님의 피리 연주를 들을 때는 그 호흡을 따라 해보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눈을 감고 듣기도 했어요. 여러 가지 감상법이 존재하는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감상법이 존재하는 공연이라, 너무 좋은 표현이네요. 저도 좀 써먹어야겠어요.(웃음)

2017 여우락 페스티벌에 참여한 젊은 뮤지션 그룹 ‘잠비나이’와 ‘씽씽’이 보여준 과감한 무대에 관객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재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2003년 창단한 국립청소년국악관현악단에서, 2006년에 결성한 그룹 바람곶에서, 2012년에 취임한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감독님은 늘 탈국악, 탈관현악, 탈악보, 탈지휘자 같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음악은 신격화된 작곡가에게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의 연주자들이 모여 음악을 가지고 놀고 새롭게 창작하는 것이다’라는 게 감독님이 주장하시는 ‘컨템퍼러리 시나위’적 음악인 거죠?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면, 예전 시대의 작곡가는 신을 대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작곡가가 그의 영혼에 내린 신의 음성을 악보로 그리면 지휘자는 신의 사제처럼 그 기호를 연주자들에게 해석해주며 음악을 통제, 장악하죠. 그때의 연주자들은 곡 전체를 이해할 필요 없이 악보만 충실히 보면 되었어요. 그게 바로 우리가 오케스트라라고 부르는 집단입니다. 물론 서양에서 오케스트라는 아주 발전된 연주 장르입니다. 그것 나름대로 전통적이고 유효한 연주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것이 있어요. 왜 요즘 세대는 더 이상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지 않을까요? 그건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전통적 종교는 더 이상 젊은 사람들에게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까요? 가치가 변했기 때문이에요. 명령을 따르기보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시대가 됐어요. 그건 관객도, 연주자도 마찬가지고요.

명령 하달 방식이 아닌, 연주자들 스스로 이끌어가는 무대… 뭔가 멋있는 이야기 같은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요. 과연 그것은 어떤 방식의 작곡인가요? 저는 개념과 플랜만 잡고 연주자가 스스로 창의적인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악보를 열린 구조로 그립니다. ‘여기는 조금 느리게’, ‘여기는 빠르게’, 이런 식(절대적 속도가 아닌 연주자에 따른 상대적 감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으로 악보에 속도의 모호성을 키우는 방식으로 쓰는 거예요. 연주자가 ‘이 마디에서는 전체적 어우러짐을 생각할 때 내가 이 정도 빠르기로 연주하면 상대 연주자가 이렇게 따라오겠구나’ 생각할 수 있게요.

전통적 연주가 익숙한 연주자들에게는 고역일 수 있겠어요. 연주를 하면서 마디마디 생각과 고민을 해야 하니까요.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참여하고 창작해야 하니까 머리는 좀 아프겠죠. 그런데 앞으로 연주는 ‘그래야만’ 하는 방식으로 바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연주자의 권리와 이익도 제대로 보장되니까요. 그렇게 되면 저작권의 개념도 달라져요. 지금의 저작권은 굉장히 자본주의적 개념입니다. 곡을 잘 쓰든 못 쓰든, 곡이 훌륭하든 형편없든 그런 건 상관없이 히트만 치면 작곡가가 모조리 가져가죠. 저는 음원에 참여한 모든 연주자가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고 봐요.

그래도 여전히 음악을 기호화한 고전적인 작곡은 계속 존재하지 않을까요? 악보를 통해 연주자에게 지시하고 통제하는 방식 말이에요. 물론 그렇겠죠. 그렇지만 저는 최소한의 약속만 표기하는 악보, 즉 컨템퍼러리 시나위적 작곡을 고민하고 지향한다는 거죠.

가능성이 큰 연주라는 측면에서 그런 게 곧 미래의 명곡이 아닐까 싶네요. 곡 자체도 중요하지만 누가 그 곡을 연주하는가 또한 매우 중요하죠. 지금까지는 같은 악보를 놓고 어떤 연주자가 작곡가의 의도에 맞게 가장 잘 해석하는가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아니에요. 연주자가 얼마나 그 음악을 자기 악기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표현하느냐가 관건이죠. 저는 그걸 하고 싶은 거예요.

지난 7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여우락페스티벌에서는 우리 음악이 건강하게 자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을 맡으셨는데, 감독님은 어떤 성과가 있었다고 보시나요? 페스티벌이 점점 침체되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행사를 통해 다시 분위기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이번 무대에 선 뮤지션들의 면면을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이나 비제도권 음악가들이 마침내 여우락페스티벌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걸 부각시키고 싶어요. 우리 음악의 자기 진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어요.

프로젝트 그룹의 연주자, 음악감독, 연출자, 작곡가, 기획자 등 지금도 여러 공연과 음악제를 동시에 진행 중인데, 이런 활동이 모두 가능하세요? 깊이 관여하는 프로젝트도 많지만 전체적인 틀만 짜주는 일도 합니다. 아이디어를 주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건 제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라서요. 그리고 사실 저 딴 일 많이 안 해요. 연습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쓰죠. 작업실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길어요. 고민하고, 상심하고, 작업하고 널브러져 있죠. 여기서 소리를 가지고 놀 때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구례 화엄사에서 9월 중순에 진행하는 화엄음악제의 총감독을 맡고 계십니다. 이번 음악제에선 30년 만에 복원되는 국보 제301호 영산회상 괘불법회와 함께 전통과 서양 음악, 불교 철학을 어우를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12년째 이 행사를 이끌고 계시다는 게 놀랍습니다. 화엄음악제는 제 정체성과도 맞는 매우 중요한 행사예요. 영상음악제의 컨셉이 변색되지 않고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져왔다는 점도 다른 음악제와 차별화되는 지점이죠. 올해의 화두는 ‘자명’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비추고 바라보는 깨달음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의미를 담았죠. 괄목할 만한 연주자들이 많이 참여할 예정이니 주목하셔도 좋습니다.

국악을 뛰어넘는 국악, 그것이 바로 감독님의 음악인데, 그 음악을 통해 정신적 치유를 경험하는 관객도 많습니다. 감독님은 주로 어떤 음악에서 그런 경험을 하시나요? 저는 록 음악을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굉장히 쇼킹했던 앨범은 라디오헤드의 입니다. 단순하면서도 극적인 형태의 전통적 곡 구조를 버리고 혁명적인 사운드에 집중한 작업인데, 아주 혁신적이에요.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선호하는 편이라 존 케이지도 좋아해요. 어떤 의미에선 스승이나 마찬가지죠. 뭐, 야구방망이로 제 뒤통수를 때려줬으면 스승 아닌가요? 존 케이지는 저에게 소리와 음악의 경계를 알려줬고, 제가 소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주인공이죠. ‘4분 33초’ 연주 들어보셨죠? 무대에 올라와서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그게 바로 ‘모든 소리에 주목하라’는 역설적인 메시지죠. 그런 소리,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음악가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만큼 지루하고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음악가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건 뭘까요? 예술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음악가가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그 새로움이 어제 공연에서 느낀 파격의 하드코어 같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어도 좋아요. 저는 관객이 공연장에서 뭔가 파괴될 것 같은 두려움 또는 압박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보거든요. 제도적 편견에 묶인 예술가가 과연 청중에게 충격적이고 새로운 경험을 안겨줄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런 사람이 예술가로서 개념과 철학적 발언을 대중에게 할 수 있을까요? 때로는 자유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아티스트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도 그런 소명 의식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JK(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