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건축가의 이중생활

LIFESTYLE

본업은 건축이지만 제품 디자인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의 이로운 딴짓.

1 프란체스코 리브리치가 폰타나 아르테를 위해 제작한 세타레 스탠드 조명.
2 가늘고 얇은 금속선이 만드는 도형이 겹치며 구조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세타레 펜던트.

건축가는 왜 가구를 만들게 됐을까
“세계는 급격히 도시화되고 이에 나는 더 많은 사람이 효율적으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에 어울리는 가구는 단연코 하나도 없다.” 르코르뷔지에가 처음 가구에 손을 댄 것은 그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건축물과 내부의 시설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르코르뷔지에의 사상에 1920년대 초 당시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같은 장식적 예술 사조에서 탄생한 가구는 걸맞지 않았다. 단순하고 기능적인 표준을 추구한 그의 건축과 맥락을 같이하는 디자인 마스터피스 체어가 생겨난 연유다. 그와 함께 근대건축 거장으로 추앙받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데어로에 등은 가구와 공간을 하나로 통합한 디자인을 추구하며 벽이나 파티션이 아닌 가구를 통해 새로운 기능의 공간과 건축을 발견했다. 건축뿐 아니라 그 공간에 놓일 제품을 통해서도 자신의 시대정신을 표현할 수 있길 바라는 건축가들. 100년 전 시대를 풍미한 건축가가 그랬듯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신예 건축가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가구와 제품 속에 녹여낸다. 세기의 디자인 피스가 이 가운데 탄생할지 모른다.

프란체스코 리브리치의 구조적 조명
지난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전 세계 조명 브랜드와 디자인 스튜디오가 출시한 수많은 조명 가운데 유독 돋보인 제품이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의 젊은 건축가 프란체스코 리브리치(Francesco Librizzi)가 폰타나 아르테를 위해 제작한 신제품 세타레(Setareh). 그의 건축을 들여다보면, 익숙한 틀에서 의도적으로 조금씩 어긋나도록 디자인해 공간에 리듬감과 자유로운 감성을 불어넣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지런한 열을 살짝 비틀고 평면적 요소에 입체적 요소를 가미하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사물을 고의로 겹쳐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식이다. 프레임 역시 중요한 요소로 대표적 작업인 ‘Casa G’의 계단은 선과 면이 만나 입체감을 이루며 공간에 리듬감을 더하는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세타레 조명 역시 고유의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선으로 이뤄진 도형이 자유롭게 얽힌 구조에 구형의 화이트 컬러 핸드블론 글라스로 입체감을 더한 디자인이 탄성을 자아낸다. 이는 가늘고 얇은 메탈의 라인을 살려 미니멀리즘을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기하학적인 구조로 건축적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튜디오 오시디아나의 페트리파이드 카펫 컬렉션.

콘크리트의 새로운 가능성, 스튜디오 오시디아나
건축가는 소재를 탐구한다. 건축에 가장 흔히 사용하는 콘크리트는 몰드에 따라 자유로운 성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건축 스튜디오, 스튜디오 오시디아나(Studio Ossidiana)는 콘크리트 소재에 주목해 페트리파이드 카펫(Petrified Carpets) 컬렉션을 선보였다. 페르시안 카펫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정원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적 오브제와 디바이더를 제안한 것. 멀리서 볼 때는 말랑말랑한 소재 같지만 직접 만져보면 딱딱한 콘크리트라는 점이 반전이다. 스튜디오 오시디아나를 이끄는 알레산드라 코비니(Alessandra Covini)는 “건축가로서 건축물의 재료와 특성을 실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페트리파이드 카펫은 우리가 예상한 콘크리트의 질감을 탈피하고 컬러를 입혀 고유의 특성이 느껴지지 않도록 만든 건축적 오브제라 할 수 있어요. 화려한 페르시안 카펫은 시각적∙촉각적으로 콘크리트와 대비를 이루는 매개체죠”라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그저 단단한 산업 소재로 여겨온 콘크리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이들의 바람은 성공적으로 실현되었다.

3 머티리얼 이머티리얼 스튜디오의 콘크리트 소재로 만든 하드웨어 유닛.   4 종이 소재로 만든 플라워 펜던트.

경험하는 건축, 머티리얼 이머티리얼 스튜디오
인도 뭄바이에 위치한 머티리얼 이머티리얼 스튜디오(Material Immaterial Studio)는 건축가 니틴 바르샤(Nitin Barchha)와 디즈니 데이비스(Disney Davis)가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 그들은 콘크리트를 이용해 하드웨어 유닛과 조명 등을 만들어내며 산업디자이너의 면모도 드러낸다. 건축물을 축소한 큐브 모양의 오브제 겸 문진과 계단을 닮은 손잡이, 건축의 일부를 잘라낸 듯한 훅과 커프링크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매일 사용하는 일상의 물건을 통해 일반 소비자에게 건축적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르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안도 다다오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같은 위대한 건축가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아 9개의 미니어처를 제작하기도 했죠.” 머티리얼 이머티리얼 스튜디오는 본래 지형을 그대로 살린 유기적 형태의 건축으로 유명하다. “자연이 주는 영감,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질감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어요. 자연을 가까이하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꽃을 닮은 종이 소재의 조명과 체어 시리즈도 디자인했죠. 우리의 경험이 소비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5 코르포 아틀리에의 ‘건축으로서의 의자’.   6 코르포 아틀리에 오피스 프로젝트.

코르포 아틀리에의 화이트 필로소피
포르투갈의 건축 사무소 코르포 아틀리에(Corpo Atelier)의 대표 필리페 파이샹(Filipe Paixao)은 선의 활용이 두드러진 건축을 설계해왔다. 새하얀 화이트 컬러를 고집하는 그의 건축은 반듯하고 깨끗한 캔버스처럼 포르투갈의 푸른 하늘과 대지를 품어낸다. “빌라모라의 한 낡은 서점을 작업실로 바꾸면서 이와 잘 어울릴 만한 의자를 디자인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코르포 아틀리에의 건축을 꼭 닮은 체어, ‘건축으로서의 의자(Chair as Architecture)’는 그의 작업을 작은 스케일로 축소한 듯한 인상이다. “돔 장식의 하얀 건물, 테라코타 타일이 깔린 바닥, 커다란 종이 달린 교회의 탑 등 서점 밖으로 펼쳐진 포르투갈 남부 도시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새하얀 벽과 붉은 바닥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지점에 우리의 오피스가 있었죠.” 풍경을 오피스 내부로 끌어들이면서 외부에서 받은 건축적 인상을 구조물과 가구에도 표현했다. 외부 풍경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하얀색 건물의 아우트라인을 본뜬 구조물, 사각형과 아치 모티브를 의자 디자인에 차용했다. 통일적 디자인을 이룬 오피스는 그 자체로 그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하고 있다. “제품과 건축 등 모든 디자인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은 같기 때문이죠.”

 

에디터 김윤영(snob@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