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은 어디에
이제 두꺼운 국어사전은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앞으론 사전을 내려놓고 ‘검색’에만 집중하면 되는 걸까? 국어사전을 위한 짧은 항변.

1 10여 년에 걸쳐 사전 <대도해>를 만드는 과정을 그린 영화 <행복한 사전>.
2 1911년 국어학자 주시경이 일제 치하에서 편찬을 준비한 국어사전 <말모이>의 원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책가방보다 무거운 국어사전을 안겨주는 게 부모의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외국어 공부를 한다면 반드시 옥편이나 영한사전부터 사두는 게 당연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요샌 아무도 종이 사전을 사지 않는다. 서점에 쌓인 사전들도 십 수년 전에 개정한 것이 대부분이다. 단어의 뜻이 궁금할 땐 국어사전 대신 ‘네이버’부터 연다. 뉴스를 보다 궁금한 사안이 생기면 ‘브리태니커’ 대신 ‘위키피디아’ 같은 ‘집단 지성의 산물’을 참고한다. 종이 사전을 찾는 이들이 사라지면서 사전 출판사들은 문을 닫았고, 특히 그 어떤 사전보다 외면당한 종이 국어사전을 찾는 이는 이제 없다. 물론 파는 이도 마찬가지.
2017년 현재 종이 국어사전은 ‘전멸’ 상태다. 국내에서 종이 국어사전은 2015년 민중서림이 펴낸 <엣센스국어사전>(제6판 전면 개정판)을 제외하면 거의 20년 가까이 개정판이 나오지 않고 있다. 더 놀라운 건 국어의 발전과 연구 활동을 관장한다는 국립국어원이 1999년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 또한 비용 문제로 초판 이후 한 번도 종이 사전 개정판을 내지 않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그간 우리 말글생활의 ‘표준’이 되어왔다. 실제로 정부와 언론, 출판사의 어문 규정은 물론 국립국어원의 어문 규범 제정 등이 모두 이 사전을 준용했다. 한데 국립국어원은 2008년 이후 웹으로만 이 사전을 증보하거나 수정하고 있다. 당연히 이 사전은 2000년대 초반부터 모든 서점에서 ‘품절’ 상태다. <고지엔>이나 <현대중국어사전> 같은 일본과 중국의 대표 국어사전이 5~6년을 주기로 종이 개정판을 내고 있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상황이 뭐가 그리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다. 종이 사전이 없으면 인터넷 사전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미련한 소리다. 출판사들의 사전 편찬 포기에 직간접 원인을 제공한 인터넷 포털 사전 서비스는 대부분 사실 종이 사전 콘텐츠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는 위에 서술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사용하고, 다음 또한 1999년에 발간한 <고려대한국어대사전>으로 사전 서비스를 잇고 있다. 종이 사전에 의존하는 이들 포털은 사실 더는 다양한 신규 콘텐츠를 공급받을 데가 없는 실정이다. 만약 종이 사전에 없는 단어는 ‘오픈국어’ 등을 통해 네티즌이 직접 올린 뜻풀이를 소개한다. 네이버는 ‘지식iN 오픈국어’를, 다음은 ‘오픈국어’를 서비스한다. 하지만 이 또한 완벽하진 않다. 네티즌이 올리는 오픈국어는 맞춤법이 틀리거나 엉터리 해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포털 사전팀의 검증을 거친다 해도, 그들 역시 국어학자나 전문 인력이 아니기에 이를 모두 제어할 순 없다.

3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는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 마르셀 프루스트의 요소가 모인 문장을 쓴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수상은 또 한번 노벨 문학상을 놓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4 5~6년 주기로 종이 개정판을 내는 일본의 국어사전 <고지엔>.
5 사람들은 이제 백과사전 하면 <브리태니커> 대신 ‘위키피디아’를 떠올린다.
터무니없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지난날 국내에서 문학을 하던 이들 대부분은 국어사전 한 권을 통째로 씹어먹듯 글을 썼다고 한다. 그들은 끝없이 샘솟는 한국말을 요리조리 알맞게 바꿔가며 문장을 빛냈다. 그래서 지금도 현진건이나 김유정이 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꼭 국어사전을 옆구리에 끼고 읽어야 한다. 서울말이든 시골말이든, 당시 문학을 하던 이들은 이 땅에서 오래 자라고 가꾼 숱한 말을 맘껏 엮어 이야기를 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금 과장된 얘길 끌어온다면,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국내 작가들이 국어사전을 보지 않기 때문’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한국 문학은 ‘국어사전을 읽지 않고 쓰는 글’이라고 말이다. 이와 맞물려 문학 번역 또한 ‘국어사전을 꼼꼼히 읽지 않고 옮기는 글’이라 한다. 한데 이것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기본도, 번역의 가장 중요한 도구도 국어사전일 텐데, 그게 제대로 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워낙 융숭한 대접을 받는 언어라 어릴 적부터 부득이하게 끼고 살 수밖에 없었던 영어사전의 입장과는 결이 다른 얘기다.
그럼 이 상황을 우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국립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의 종이 개정판을 펴낼 수 있도록 청원이라도 해야 할까? 그렇게라도 해서 무엇이 바뀐다면 좋겠지만 이 또한 해결이 쉽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수두룩하다.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온라인판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보라. 우리가 뉴스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전기차’나 ‘블로거’, ‘팝업창’, ‘콜센터’ 같은 단어의 뜻풀이는 이 사전에서 찾아볼 수도 없다. ‘보톡스’도, ‘헬스장’도 없고 ‘새우무침’이나 ‘보리새우무침’ 같은 단어는 있어도 정작 ‘콩나물무침’이나 ‘시금치무침’ 같은 건 없다. ‘기성화’는 있지만 ‘수제화’는 없고, ‘샤워기’는 있어도 ‘샤워실’이나 ‘샤워장’은 없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럼 이번엔 국어사전이 앞으로도 계속 같은 형편을 이어갈지에 대한 전망은 차치하고, 그것을 ‘공공재’로 간주해보는 건 어떨까? 오늘날 국어사전은 누구의 것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없으면 살기 괴로운 것이 됐고,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혹은 언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에) 그렇게 주장하는 게 완전히 무리도 아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우린 그에 맞게 좋은 국어사전을 만들 수 있도록 대응해야 한다. 상대가 정부가 됐든 기업이 됐든 좋은 사전을 내놓으라고 말이다. 자주 개정된 좋은 사전이 있으면, 인터넷 포털 또한 좋은 사전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한데 사전이 20년 가까이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면, ‘사전 서비스’는 있어도 ‘사전 콘텐츠’는 죽을 수밖에 없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작업으로 사전 <대도해>를 만드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 2014년 국내에 개봉한 이 영화에선 주인공과 주변인들이 ‘오른쪽’을 정의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고민 끝에 완성한 오른쪽의 정의는 ‘숫자 10을 썼을 때 ‘0’이 있는 위치’.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극 중의 사전 편찬자들은 단어의 정의 하나하나를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이들은 경쟁 사전의 뜻풀이를 참고하며, 그보다 쉽고 정확하고 알맞은 풀이를 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영화이기에 가능했겠지만, 분명 생각해볼 거리를 여럿 던져준다.
2017년 현재 대다수의 사람이 이전 국어사전을 펴놓고 찾던 것을 검색으로 해결한다. 내가 쓴 문장의 뜻이나 연결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포털을 연다. 만약 같은 결과가 많이 나오면 안심하고 쓸 수 있다. 개념에 대한 설명도 딱딱한 백과사전보다는 누가 블로그에 써놓은 것이 이해하기 쉬울 때가 많다. 이렇게 포털은 기존에 국어사전이 해온 일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은 무용지물이 된 걸까? 그렇지 않다. 검색 서비스는 대부분 첫 번째 검색 결과를 국어사전을 토대로 내놓는다. 국어사전은 ‘최소한의 검색’이자 ‘검색 결과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 국어사전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