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erfect Harmony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조합이 이끌어내는 어울림의 파장은 의외로 강렬하다. 예상이라는 범주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교토에서 열린 루이 비통의 2018년 크루즈 컬렉션은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 예가 아닐까 한다. 깊은 산속에 지은 현대적 건축물과 동서양의 직접적이고도 파격적인 조합은 낯설지만 디자이너만의 특별한 시각을 드러내며 강한 여운을 남겼다.

교토에 뭐가 있나? 루이 비통의 크루즈 쇼 개최 장소를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보통 브랜드에서 크루즈 쇼를 선보일 때는 여행이라는 테마에 맞춰 이국적인 장소를 선택하고 그곳의 전통 의복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컬렉션에 녹여내기 마련. 일본은 너무 가까운 나라인데다 아시아 문화권이라 기대치가 조금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토에서 차로 약 1시간 산길을 달려 도착한 미호(Miho) 박물관에 세운 쇼장을 본 순간, 이내 루이 비통과 디자이너 니콜라스 제스키에르의 스케일에 감탄했다. 산속 깊은 곳에 우뚝 선 이색적인 건축물과 쇼를 위해 산 중턱 터널과 박물관을 연결해 완성한 기다란(500m도 넘는!) 캣워크 그리고 그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철제 구조물이 주는 웅장한 감동은 5월의 뜨거운 햇살과 뒤엉켜 정말이지 놀라웠다. 여기서 잠깐 미호 박물관에 대해 설명하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 I.M. 페이가 히말라야 계곡에 숨은 지상낙원으로 알려진 샹그릴라를 표현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터널을 지나야 박물관이 나오는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룬 하나의 거대한 미술품 같은 공간이다.

1 크루즈 런웨이 쇼에 참석한 셀레브러티. 2 500m가 넘는 런웨이 현장 .
루이 비통은 2018년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전통에서 모더니티로의 진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긴 캣워크에는 일본 사무라이의 갑옷에서 영감을 받은 실루엣과 디테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룩이 연이어 쏟아졌다. 일본의 판화와 수묵산수화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프린트와 이 지역의 전통 복식을 보는 듯한 실루엣은 일본의 거장 영화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속 분위기를 떠올리게 했고, 모던한 팬츠 슈트와 건축적 실루엣의 튜닉은 에도시대 말기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 저지와 가죽 소재를 혼용한 스웨터는 일본 무사의 갑옷을 상기시켰다. 이 밖에도 오비 벨트를 적용한 테이퍼드 팬츠와 가부키 가면으로 꾸민 핸드백은 쇼가 열리는 장소와 지역 문화에 대한 오마주를 가득 품고 있다. “일본은 내게 익숙한 나라다. 이곳은 내가 20여 년 전 영감을 찾을 때 처음 여행한 장소 중 하나고, 그 후 줄곧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이번 컬렉션은 일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나에게 준 선물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 니콜라스 제스키에르의 설명처럼 뜨겁고 열렬하게!

2018 Cruise Bag Collection
니콜라스 제스키에르는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의상 대부분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일본 디자이너 간사이 야마모토에게 경의를 표했다. 더불어 그와 협업해 루이 비통 백과 액세서리를 위한 아이콘, 상징,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런웨이를 가득 메운 일본의 색채가 녹아든 가방의 특징을 소개한다.
1. 벤토 박스(Bento Box)
구조적 디자인이 특징으로 실제 일본 전통 벤토 박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브랜드의 상징적 디테일인 자물쇠 잠금장치로 포인트를 주었고, 모노그램 캔버스뿐 아니라 루이 비통의 시그너처 가죽 중 하나인 에피 가죽 소재로도 만날 수 있다.
2. 가부키 마스크 (Kabuki Masks)
런웨이에 총 일곱 차례 등장한, 이번 쇼의 주요 제품! 일본 전통 가부키 가면에서 영감을 받은 이 라인은 메종의 시그너처인 알마 가방과 새로운 디자인의 포쉐트로 선보인다.
3. 골든 라이트 (Golden Light)
석양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으로 부드러운 가죽 위에 특별한 공정을 거쳐 골드 프린트를 연출했다. 블랙과 골드 두 컬러만 사용해 패셔너블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4. 가부키 스티커 (Kabuki Stickers)
모노그램 캔버스에 프린트한 스티커는 ‘행운’을 상징하며, 이 프린트들은 쇼의 의상은 물론 스니커즈에도 적용했다.

A talk with Nicolas Ghesquière
루이 비통의 2018년 크루즈 컬렉션을 보고 나니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니콜라스 제스키에르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인 이유와 그가 그려가고 싶은 루이 비통 여성 컬렉션의 이미지까지. <노블레스>가 묻고 그가 답했다.
루이 비통은 트렁크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이는 여행과 이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크루즈 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한데 2018년 크루즈 쇼 개최 장소가 무척 인상적이고 이례적입니다. 일본, 교토 그리고 미호 박물관. 이러한 이야기가 시작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5년 전쯤 미호 박물관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언젠가 꼭 이곳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크루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장소를 떠올렸고, 바로 영감이 떠올랐죠. 사막이 인접한 팜스프링스, 바다의 도시 리오에서 쇼를 개최한 이후라 푸른 숲에 둘러싸인 또 다른 풍광을 소개하면 어떨까 했죠. 짙푸른 계곡 한가운데에 고고학 박물관을 건축한 I.M. 페이의 시도는 매우 파격적이면서 도전적이었으니까요.
메종 루이 비통에 합류해 처음 선보인 2014년 컬렉션부터 오늘까지. 만화, 예술, 도시 풍경 등 일본 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한국, 중국, 타이완 등 다른 나라의 프레스가 질투할 만큼! 지난 20년간 일본을 여행했다고 들었는데 유독 아시아 국가 중 일본에 특별한 애정을 보내는 이유는 뭔가요? 하하, 저는 일본, 그중에서도 교토를 정말 좋아해요. 20년 전쯤 처음으로 일본을 여행할 때 알게 된 매우 특별한 도시죠. 일본에 올 때마다 항상 들러요. 일본은 전통과 관습을 보존하는 능력이 뛰어난 동시에 현대적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전통을 잘 유지하면서 미래적이죠. 그래서 정말 독특한 것 같아요.
이번 컬렉션은 퓨처리즘과 모더니즘이 조화를 이룬 스타일, 섬세한 디테일과 더불어 레이어링 연출법이 돋보였습니다. 이 밖에 특별히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자신이 일본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고, 그래서 매우 유럽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동시에 이 특별한 나라의 문화를 가미하고 싶었죠. 사실 일본의 문화를 해석하는 건 어려웠어요. 각각의 요소를 컬렉션에 포함시킬지 말지 선택하는 일은 굉장히 복잡한 상황으로 이어졌죠. 그리고 왜 이번 컬렉션이 제가 루이 비통에서 지금까지 작업한 컬렉션 중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컬렉션인지 깨닫게 해줬어요.
모델들의 메이크업이 인상적입니다. 그것도 당신의 아이디어였나요? 모델들은 일본과 유럽, 미국의 강인한 여성… 그러니까 글로벌한 여성을 상징해요. 저는 이러한 여성의 이미지를 일본의 모든 문화적 상징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죠. 이를테면 기타노 다케시가 출연한 영화 <배틀 로얄(Battle Royale)>에 등장하는 강한 히로인처럼요.
루이 비통 여성 컬렉션의 수장으로 당신이 구현하고 싶은 여성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사실 루이 비통이 RTW는 시작한 지 불과 10여 년에 지나지 않았고 아직은 현재진행형 같아요. 당신이 꿈꾸는 루이 비통 여성이 꼭 갖췄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요? 루이 비통의 여성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에 동의해요. 오늘날 여성들은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해요. 때로는 전투복을 입고 투사가 되어야 하죠. 물론 관능적인 투사가. 제가 그리는 루이 비통 여성은 어디에 있든 사명을 다해 여정에 나서고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에서 여행을 하고 있으며 목적이 뚜렷해요. 이는 매우 양성적인 실루엣을 띠는 절충적 혼합이죠.
간사이 야마모토와 협업했습니다. 그와의 작업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당신은 1971년에 태어났고 그는 1973년에 데이비드 보위의 줄무늬 보디슈트를 디자인했으니, 큰 나이 차에서 오는 어려움 혹은 즐거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간사이 야마모토의 딸과 친구예요. 그 친구를 통해 컬렉션을 위한 협업과 몇 가지 작품을 디자인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봐달라 부탁했고, 흔쾌히 허락해주셨죠. 그게 스티커 프로젝트에서 시작해 옷과 가방 등으로 발전했고요. 사실 전 야마모토의 팬이자 데이비드 보위를 위해 완성한 옷들을 무척 좋아해요. 파리에서 처음 활동한 최초의 일본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자, 즐거움을 선사하는 디자이너라는 사실도요. 많은 감탄과 감동이 오갔고 재미있었습니다.

이번 크루즈 쇼 피날레 무대에 한국 배우 배두나가 섰어요. 피날레 룩은 쇼에서 매우 중요한 모먼트인데 그녀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두나는 제 친한 친구예요. 열렬한 팬이기도 하죠. 두나는 강하고 자신의 결정에 대해 결연하며 용감한 현대 투사의 이미지에 꼭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프닝 무대엔 후쿠시마 리라(Rila Fukushima)가 섰는데, 그녀는 모던한 일본 배우예요. 두나와 리라 모두 루이 비통의 여성상을 대표하는 강한 개성이 돋보이는 특별한 외모를 지녔고요.
과거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 적이 있고 이번 무대엔 배두나와 후쿠시마 리라가 섰습니다. 만화, 디지털 등 사이버 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아 보여요. 더불어 하이패션과 디지털에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한 결합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브랜드가 이를 시도 중인데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제겐 패션과 디지털 세계의 결합이 매우 자연스러워요. 몇 년 전 도쿄에 왔을 때 1995년에 만든 만화의 이름을 딴 ‘에반게리온’이라는 컬트 숍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피겨와 코스프레 의상에 시선을 빼앗겼어요. 전 이런 미적 취향에 매력을 느껴요. 판타지와 현실을 자연스럽게 결합한. 사실 디지털 세계는 매우 정확해요. 모든 것을 확대해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완벽해야 하고 아무것도 숨길 수 없죠. 디자이너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고, 소셜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이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니 이는 흡사 디지털 세계와 닮았다고 생각해요. 그 때문에 전 디지털 세계에 대한 끌림을 더욱 강렬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쇼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한편으론 회사가 당신을 무척 사랑한다는 생각도 했죠. 해보고 싶다 한들 지원해주는 이가 없다면 그저 꿈일 테니까요. 루이 비통은 저와 제 창의력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해줘요. 모든 사람이 이러한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매번 컬렉션이나 크루즈 쇼를 개최하는 장소마다 의상, 모델, 게스트들이 함께 여행을 합니다. 단체 여행인 셈이죠.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어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가능하다고는 상상도 못한 정말 특별한 일이고,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번 쇼는 2017년 5월에 선보였지만 2018년을 위한 컬렉션이에요. 다시 말해 디자이너들은 매번 시즌을 앞서 살잖아요. 지금 당신이 준비하고 있는 쇼는 언제를 위한 것인가요? 설마 다음 크루즈 컬렉션의 종착지에 대해서도 벌써 준비를 마쳤나요? 하하, 맞아요. 디자이너는 계속 현실에서 미래로 남들보다 앞서가려고 노력하죠. 이렇듯 두 시간대를 살다 보니 현재의 시간에 무뎌지는 경우도 있어요. 현재 저와 저희 팀은 겨울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고 이미 2019년을 살고 있어요.
에디터 이현상(ryan.lee@noblesse.com)
현지 취재 서재희 사진 제공 루이 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