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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on Art

LIFESTYLE

제17회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한 홍순명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 <장밋빛 인생>이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풍경의 확장과 해체를 거듭하며 회화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 작가, 홍순명의 예술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시 전경.

솜털이 돋아난 가녀린 목덜미, 검게 탄 성냥 위에서 사그라지는 불꽃, 도로 위에 드리운 기다란 나무 그림자… 어디서 본 것 같지만 딱히 인상적이지 않은 풍경. 천장에서 바닥까지 줄지어 늘어선 1600개의 캔버스는 누군가의 찰나 혹은 타국의 하루를 포착한 듯하다. 대구미술관에서 홍순명 작가의 ‘사이드 스케이프’를 만난 첫인상은 이러하다. “옆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상대적인 개념이죠. 목적이 분명한 장면 속에서 주변 풍경을 통해 옆이라는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이드 스케이프’의 창작 의도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알 수 있듯 홍순명 작가의 시선은 주목하지 않는 것을 향한다.

1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2 사고 현장에서 수집한 오브제로 작업한 ‘메모리 스케이프’ 시리즈.   3 ‘메모리 스케이프 – 팽목. 2015년 4월’, 2015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와 파리 고등미술학교를 거친 홍순명 작가는 설치, 판화, 입체, 미디어 아트,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오랫동안 실험적 시도를 이어온 인물로 회화의 영역을 확장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사건과 그 이면의 진실을 담은 그의 작품은 캔버스와 종이, 거리의 오브제 등 소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표현 기법을 만들어냈다. 이 같은 실험정신은 그가 제17회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한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이드 스케이프’, ‘메모리 스케이프’, ‘사소한 기념비’, ‘장밋빛 인생’ 등 최근 10년간 주요 연작 100점을 소개하는 전시는 사용한 캔버스만 3500개에 달할 만큼 방대한 규모다. 그중 ‘사이드 스케이프’ 시리즈는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작품. 온·오프라인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보도사진의 주변을 확대한 후 캔버스에 옮기고, 직접적인 제목을 붙이는 작업이다. 자극적인 헤드라인 아래 존재하는 보도사진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일회성 콘텐츠로 소비되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는 사건의 진실을 찾는 실마리가 된다. “보도사진이라는 소재 때문에 많은 분이 사건의 경중에 따라 이미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이드 스케이프’의 경우 철저히 사건을 배제하고, 제 눈길을 끄는 주변 이미지만 선정했습니다. 현재 작업과는 조금 다른 접근 방식이죠. 2014년까지 1년에 250여 개씩 작품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국내외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가 말한 변화는 ‘사이드 스케이프’ 이후에 선보인 ‘메모리 스케이프’에서 드러난다. 여수 기름 유출 사고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 현장에서 수집한 오브제 위에 캔버스를 겹겹이 둘러 형체를 만들고 그 위에 보도사진을 편집한 이미지를 그렸다. 사건의 본질에 대한 은유를 담은 이전 경향에서 벗어나 한층 직접적인 화법이다. 내부 사물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형태의 ‘메모리 스케이프’는 금방이라도 캔버스를 뚫고 나올 것 같은 뾰족한 형상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마치 사회와 개인, 이념과 이념이 부딪치는 날 선 감정이 밖으로 드러난 듯하다.

4 보도사진의 주변 이미지를 그린 ‘사이드 스케이프’ 시리즈.   5 관람객과 함께 한 개막식 퍼포먼스.

이번 개인전의 전시명이자 작가의 연작 중 하나인 ‘장밋빛 인생’은 2016~2017년에 작업한 결과물로 전작에 비해 보는 이들이 좀 더 쉽게 사건을 파악할 수 있는 구성을 취했다. 우성학 연구의 모순, 다이아몬드 산업의 발전 속에 희생된 아프리카인 등 현대사회의 어두운 실상과 화려한 핫 핑크 사이의 간극은 사건과 마주한 작가의 냉소적 시선을 느끼게 해준다. 최근 홍순명 작가가 선보인 일련의 작품을 살펴보면 사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짙어진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준 세월호 참사를 변화의 계기로 꼽는다. “성인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참사가 일어나고 3개월 후 팽목항에 갔는데 당시에도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미궁에 빠져 있었어요. ‘우리는 왜 아무것도 모를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 항구 주변에 있는 조개껍데기를 보다 문득 ‘이 조개는 진실을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의 사물을 하나씩 모으며 제 방식대로 타임 캡슐을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사소한 기념비’는 ‘메모리 스케이프’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팽목항에서 찾은 사물들을 투명한 랩으로 수십 번씩 감싸 메탈릭한 색감을 띠는 작품은 물속에서 지상으로 떠오르는 공기방울을 상징하며 예술적 방식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이에 더해 총 304개의 캔버스로 구성한 ‘세월호 시리즈-건져진 세월호 외’는 13개의 세월호 관련 보도사진을 편집해 홍순명식 사건 읽기를 보여준다. 지난 9월 25일 전시 개막식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은 관람객이 무작위로 작품을 설치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가 준비한 퍼포먼스를 보면서 문득 전시명 ‘장밋빛 인생’은 냉소적 성향의 작품 ‘장밋빛 인생’과 달리 희망을 염원하는 의미란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의 기저에 희망이 자리한 것은 아닐까? 작가의 실험정신을 만날 수 있는 전시는 내년 1월 7일까지 이어진다. 은유와 직설, 해체와 확장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회화의 새로운 표현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홍순명 작가의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대구미술관(2018년 1월 7일까지) 문의 053-803-7000

 

에디터 박현정(hjpark@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