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의 맛
저자극 콘텐츠. 뭐라 형언할 순 없지만 기분 좋은 자극.

배의 항해 경로를 특별한 편집 없이 내보내는 노르웨이 NRK의 ‘슬로TV’.
‘피로 사회’, 지금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일을 마치고 어떻게 해야 제대로 쉬는 건지 모르며, 우리 중 또 누군가는 근무외 시간까지 일하도록 사람을 내몬다. 사실 임금을 받지 못하고 주말까지 일하는 게 특별한 경우도 아니다. 누군가는 아기를 낳고 일주일 만에 다시 일하러 나왔다는 얘길 자랑스럽게 늘어놓기도 하니 말이다.
대중매체라고 다를까? 천만의 말씀. 인기 드라마엔 어김없이 소시오패스가 한 명쯤 등장한다. 평범한 ‘싸대기’는 식상하다며 ‘미역싸대기’와 ‘파스타싸대기’가 등장했고, 요즘 트렌드는 포기김치로 뺨을 맞는 ‘김치싸대기’다. 한편 어떤 배역은 늘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다.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7옥타브 성량은 ‘분노 담당’ 여배우의 기본 옵션. 또 ‘출생의 비밀’, ‘유전자 조작’, ‘살인 교사’, ‘불륜’, ‘납치’, ‘배신’, ‘강간’, ‘불치병’ 같은 소재는 그런 드라마의 원동력이다. 사실 이쯤 되면 피로 사회는 한국 사회를 너무 정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더, 더, 더, 더, 더, 더,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실 ‘전투 사회’나 ‘해체 사회’, ‘폐기 사회’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 고위험군 사회에도 피난처는 있다. ‘저자극 콘텐츠’다. 이는 SNS와 TV 프로그램, 인터넷 기사 등에 만연한 자극적 표현에 대한 반대급부로 생겨났다. 자극에 쾌감을 느끼던 기존의 젊은 층이 너무 과한 그것에 피로를 느끼며, 일상적이고 소소한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향유한다는 내용.

1 손으로 고무찰흙을 반죽하는 모습을 한없이 보여주는 ASMR 영상. 2 페이스북 페이지 ‘무자극컨텐츠연구소’가 ‘하늘색 건조판과 갈색 쟁반입니다’라고 올린 이미지.
이 분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다. 괄호 안의 단어를 직역하면 ‘자율감각 쾌감 작용’. 이는 속삭이듯 작고 반복적인 소리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을 말한다. 빗소리부터 바람 소리, 연필로 종이에 글 쓰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밀가루 반죽을 휘젓거나 케이크 시트를 까는 소리 등 일상의 흔한 소리가 신경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사실 이는 ‘백색소음’과 비슷한 개념이다. 물론 다른 점은 있다. 백색소음이 거슬리는 외부 소음을 덮는 데에 중점을 둔다면, ASMR은 듣는 이의 감각을 ‘자극(trigger)’해 기분 좋은 ‘느낌(tingle)’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유튜브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ASMR은 ‘치유의 소리’로 알려지며 현재 관심이 뜨겁다. 유튜브에만 80만 개에 달하는 한국어 ASMR 영상이 존재한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저자극 콘텐츠로 팔레트에 여러 색의 물감을 풀고 그걸 마구 섞는, 정말로 ‘다른 색을 만드는 것 외엔’ 어떤 목적도 없는 영상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다. 일례로 팔로워 수가 81만 명이나 되는 ‘아네트라베츠키(annettelabedzki)’의 인스타그램엔 아무 말 없이 진행자가 그저 물감을 섞는 영상이 수백 개나 올라와 있다. 하지만 구독자들은 여느 고자극 콘텐츠와는 다른 의미에서 ‘더, 더, 더’를 외치며 호응한다. 또 다른 인스타그램 계정 ‘샌드 타기우스(sand.tagious)’는 찰흙과 비슷한 모래 장난감 ‘키네틱샌드’로 덩어리를 뭉개고, 썰고, 퍼내고, 자르며 갖가지 모양을 만드는 영상만 업로드한다. 팔로워 수는 40만 명.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페이스북엔 아예 ‘무자극 콘텐츠’를 컨셉으로 한 국내 계정까지 등장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무자극컨텐츠연구소’는 새로 칠한 아스팔트 위 중앙선, 낙엽을 담은 쌀 포대, 거미가 없는 거미줄에 걸린 나뭇잎, 김장하려고 씻어둔 파, 숲속을 걷는 고양이의 뒷모습, 햇빛을 받은 건물 외벽, 택시 뒷좌석의 창문 스위치, 다 먹은 김통, 페트병에 담은 녹두, 자전거 바구니, 유리병에 든 동전, 식당에서 내준 앞접시 같은 정말 사소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 올린다. 사진만 올리는 게 아니라 독자의 댓글에 답변도 하고, 매주 수백 개씩 들어오는 제보 사진을 정리해 게시하기도 한다. 이 페이지는 현재 4만 8000여 명이 팔로하고 있다. 운영자는 한 인터뷰에서 “SNS 속 자극적 콘텐츠 사이에서 자극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며 정말 ‘무자극’적으로 자신의 페이지를 소개했다.

여러 색의 물감을 풀고 그걸 섞는 ‘아네트 라베츠키’의 인스타그램 영상.
사실 저자극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경향은 해외에서 먼저 나타났다. 솔직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저자극’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북유럽 국가의 예다. 노르웨이에선 ‘달리는 기차의 창밖 풍경 7시간’, ‘뜨개질 전문가가 직접 양털을 깎아 실을 만들고 뜨개질하는 3시간’,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10시간’, ‘크루즈선의 항해 경로 130시간’ 등을 특별한 편집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방영하는 방송국 NRK의 ‘슬로TV’가 인기다. 2009년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초반엔 무모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현재는 다른 북유럽 국가도 비슷한 프로그램을만들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럼 국내외를 비롯해 이렇게 저자극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문화 평론가 차우진은 “화려한 이미지에 시선이 가다가도, 고즈넉한 자연풍경을 보면 편안해지는 것처럼 자극을 피했을 때 여유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흔히 경험 가능한, 뭔가 형언할 순 없으나 ‘기분 좋은 자극’이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이런 저자극 콘텐츠는 정말 알려진 그대로 사람에게 이롭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예상과 달리 한 주류 미디어는 저자극 콘텐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 예로 JTBC의 한 뉴스는 ASMR을 두고 “지나칠 경우 부작용이 있으니 주의하라”라는 요지로 보도했다. 말하자면 ASMR 사용이 잠드는 데에 잘못된 조건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 즉 ‘수면을 돕는 용도로’ 애초에 사용했다면, 나중엔 ‘이게 없으면 숙면할 수 없다’는 뉘앙스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ASMR이 수면 유도에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안정감을 통해 유도하는 것일 뿐 ASMR 자체가 직접적으로 수면을 유도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극 콘텐츠의 인기는 앞으로도 쉬이 꺾이지 않을것 같다. 아니, 더 굳건해질 거란 생각이다. 볼거리의 홍수 속에서, 과한 콘텐츠의 태풍 속에서 피로감을 느낀 이들의 유일한 피난처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심리적 안정을 느낀 경험, 따스한 침대에서 듣는 창밖의 달그락거리는 떨림, 실제로 누군가가 옆에서 귀지를 파주는 것 같은 오묘한 흥분.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을 지금 저자극 콘텐츠가 아닌 무엇에서 또 느낄 수 있을까?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