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더 짧게
한 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새로운 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꽉 찬 이맘때, 흐르는 시간의 한가운데서 짧은 시간을 투자해 기나긴 여운과 감동을 누릴 수 있는 책 세 권.

“너무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매미 허물은”, “꽃의 얼굴에 주눅이 들었구나 어렴풋한 달”. 이 짤막한 글귀는 함축 시의 원조인 일본 시 ‘하이쿠’의 시구다. 시 중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인 하이쿠는 단 열일곱 자로 이루어졌다. 제목도 없다. 하지만 짤막한 글에 함축한 인생과 자연에 대한 깨달음의 깊이는 무한하다. 하이쿠를 대표하는 시인 마쓰오 바쇼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는 책 <바쇼 하이쿠 선집>엔 그가 지은 1100편의 하이쿠 중 대표작 350편이 실렸다. 물론 시만 읽어도 마음에 오래도록 여운이 남지만, 류시화 시인이 마쓰오 바쇼가 시를 쓴 당시 상황이나 사회적 배경에 대한 해설을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시와 어울리는 아름다운 그림은 덤이다. 저자가 ‘가루미’(가벼움을 의미하며,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시를 쓰는 것)라고 소개한 최초의 하이쿠 “나무 아래는 국이고 생선 회고 온통 벚꽃 잎”도 수록했다. 당시 문단에선 평범한 일상은 시의 소재가 될 수 없다고 여겼지만, 저자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그 덕분에 쉬이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은 그의 시에 담겨 특별한 일상이 됐다.
일본에 하이쿠가 있다면 한국엔 하상욱의 시가 있다. 단 두 줄의 짧은 글로 소셜 네트워크에서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은 하상욱의 시집 <서울 시 1, 2>를 펼쳐보자. 물론 웹에서 흥한 시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하이쿠에 비교할 순 없다 해도, 그 안에 담긴 해학만큼은 못지않다. 이 책은 무료 전자책이 먼저 나왔지만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종이책으로 출간됐다. 전자책을 종이책으로 출간한 건 당시 한국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상욱 시인은 따로 글쓰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데도, 짧은 순간에 심상을 확장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특히 글에 담긴 위트가 대단하다.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이라는 시의 내용만 읽었을 때와 글 뒤에 붙은 제목 ‘다 쓴 치약’까지 보고 난 후 감상이 사뭇 다르듯이 말이다. 저자가 평소 문득 떠올린 생각을 포착한 군더더기 없는 글은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그래서 더 읽기 쉽다. 저자는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짧고 명료한 글을 계속 써나갈 예정이라고. 지금까지 짧은 시가 당신의 마음을 울렸다면, 이제는 이어령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자신의 생각을 간결한 글로 전한 <짧은 이야기 긴 생각: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가 기다리고 있다. 저자가 살면서 깨친 생각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자 시작한 KBS 프로그램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가 책으로 탄생한 것. 그렇다면 왜 80초일까? “80초의 8자를 눕혀보세요. 무한대를 뜻하는 기호 ∞(인피니티)가 됩니다. 짧은 순간에 무한하고 영원한 의미가 담긴 것이죠”라고 저자 이어령은 말한다. 이 책은 총 세 권으로 펴냈으며 권마다 다른 화가가 삽화를 그렸다. 감동 편 <느껴야 움직인다>는 오순환이, 지혜 편 <길을 묻다>는 이성표가, 창조 편 <지우개 달린 연필>은 에디 강이 참여했다. 책은 삶의 한 곳에서 발견한 기발한 메시지, 감동 스토리, 삶의 지혜를 다양하게 녹여냈다. 저자는 각 작가의 개성이 담긴 그림과 함께 짤막한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해설을 덧붙였고, 책에 삽입된 QR코드로 동영상을 볼 수도 있다. 잠깐이면 된다. 조금만 시간을 내어 세 권의 책에 담긴 글을 읽어보자. 마음 한가득 잔향이 남을 것이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김흥수